해방이 되자 해외로 망명했던 김구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속속 귀국하고 미군정이 실시되고 얼마 후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사항인 신탁통치를 실시하려고 하지만 이승만과 김구는 이를 반대하여 전국적으로 반탁운동을 벌인다. 그후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를 세우려하고 김구는 협상을 하기 위하여 평양에 가지만 평양회담은 실패한다. 1948년 8월 15일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되자, 김구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붓글씨로 세월을 보내다 그 이듬해 괴한 안두희의 총탄을 맞고 74세의 생애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