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한테 이혼요구를 받는다. 경도제대 출신인 우영은 당시 한국인으로서 일본 외무성 관리로 임명되어 신혼 당시 만주국 안동 총영사로 외교관 생활을 지낸다. 이러한 순조로운 환경속에서 혜석은 회화며 문필생활에 정진할 수 있었고 4명의 자녀도 낳았다. 파란의 원인은 부부동반으로 구미를 순시했을 때 파리에서 알게된 최린과의 우정이었다. 여류화가와 독립선언문 서명자 33인의 한사람인 최린, 그 무대가 파리이고 보면 사회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이런 여론에 재산도 자녀도 모두 빼앗긴 채 이혼당했고 자녀들을 그리며 예도에 정진함으로 상혼을 달래려고 노력하지만 무위로 끝난다. 여인의 행복은 예술도 가정을 추방당하고는 존재치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