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동네에 ‘억수탕’이라는 공중 목욕탕이 있다. 한가한 오후 3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한창 바쁠 시간, 동네 아줌마들을 제외하고는 할 일 없는 사람, 할일 많은 사람 등 모두 나름대로의 사연을 안고 억수탕을 찾아온다. 남탕에는, 영화 감독 지망생으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이현세 만화로 시간을 소일하는 완기와 그에게 제작비를 지원한다며 ‘풋고추가 좋아!’라는 싸구려 영화를 찍자고 제안하는 제작자가 있고, 병원 근처 목욕탕은 환자들을 만날 지 모른다며 멀리서 찾아온 비뇨기과 의사, 그 의사가 오전에 진료해 주었던 성병 걸린 스님. 수업을 땡땡이 치고 여탕을 훔쳐보러 온 중학생들과 목욕탕이 자신의 안방인냥 진을 치고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시원하다며 창을 한가락 읊어대는 동네 영감, 그리고 대낮부터 만취되어 목욕탕 내의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동네 건달, 벗은 몸의 물건(!)만으로 이 모든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일명 ‘코큰 남’ 등등... 남탕에서는 건달과 코큰 남, 그리고 성병걸린 스님과 완기 등의 ‘힘’과 ‘크기’의 대결이 벌어지고. 한편, 여탕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만난다. 누드 사진 작가로서 이상적인 몸매의 모델을 찾고자 하는 정미, 다음날 포경 수술을 할 5살박이 아들과 시어머니를 데리고 온 철수 엄마. 까다로운 철수 할매의 오랜 친구인 용성댁, 철수의 짝사랑 은경이와 은경 엄마. 밤 영업을 위해 목욕을 하러 온 순정파 술집 처녀와 현실파 술집 처녀. 이들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고야 마는 환상적인 몸매의 러시아인 모델 나타샤, 그리고 여탕을 훔쳐보기 위해 ‘여장’을 한 채 들어온 ‘여탕훔쳐보기 상습범’이 그들이다. 여기에 치사하게 목욕탕의 잡다한 신변잡기를 훔치는 도둑년.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등을 밀어준답시고 설쳐대는 구의원 후보 아내. 이들과 함께 어울어지는 남녀탕의 때밀이들과 좋은 값을 쳐주겠다며 목욕탕 주인 할머니를 닥달하는 부동산업자까지, 모두가 억수탕 안에서 한바탕 촌극을 벌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