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삼십대 중반의 정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상태이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인 그의 일상은 지극히 담담할 뿐이다. 좋아하는 여학생사진을 확대해 달라며 아우성을 치는 중학생들과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복원해달라는 아주머니, 혼자찾아와 쓸쓸히 영정 사진을 찍는 할머니 등 소박한 이웃들속에 파묻혀 있다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안된다. 하지만 어느날 생기발랄한 주차단속원 다림을 만난 후 그는 미묘한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사진관 앞을 지나며 단속한 차량의 사진을 맡기는 다림. 필름을 넣어달라며 당돌하게 요구하기도 하고, 주차 단속중에 있었던 불쾌한 일들을 털어놓기도 하는 그녀가 정원에겐 마냥 예쁘기만 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서고 있는 자신과 이제 막 삶을 시작하는 스무살 초반의 그녀와는 긴 얘기를 엮어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정원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뒤늦게 삶에 집착하게 될까봐 무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