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헝가리 출신의 아로 톨부킨은 과테말라의 디비노 레덴토르 선교회 병원에 불을 질러 7명을 산 채로 죽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아로 톨부킨은 체포 후 그 전에 자신이 5명의 여인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인 적이 있다고 고백했고, 미제사건으로 분류되었던 17명의 여인들(모두 임산부들이었다) 역시 그가 불태워 죽였다고 고백했다. 이 사건은 군사정권 하에서 혼란스러운 내전을 계속하던 과테말라에 엄청난 스캔들이 된 사건이었다. 체포 직후 아로 톨부킨과 그를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던 리즈 오귀스트와 이브 키트만은 아로 톨부킨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아로 톨부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녹취한다. 이 이야기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은 환상적인 이야기였고, 리즈 오귀스트와 이브 키트만은 아로 톨부킨이 만들어낸 상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다큐멘터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15년 후 리디아 침머만은 우연히 아로 톨부킨의 이야기와 두 프랑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접하고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리즈 오귀스트가 죽은 뒤 미완성 필름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던 이브 키트만에게서 영화에 대한 권한을 양도받는다. 동료인 아구스티 빌라롱가와 아이작 레신를 설득한 그녀는, 아로 톨부킨에 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와 재연 드라마의 형식을 혼용한 극영화의 형태로 완성시킨다. 그 결과가 바로 <아로 톨부킨, 살인의 기억>이다. 리즈 오귀스트가 감옥에서 인터뷰한 아로 톨부킨은 ‘그들을 불태워 죽인 것은 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 필요도, 돌봐줄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냉혈한이었다. 그러나 선교회 병원에 머물며 일하던 아로 톨부킨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완전히 다른 증언을 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아로 톨부킨은 죽기 직전 선교회 수녀들에 의해 구출된 뒤 선교회에 머물며 그곳에서 보호하고 있던 어린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과묵하고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다. 리디아 침머만과 아이작 레신는 이브 키트만과 리즈 오귀스트가 다큐멘터리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아로 톨부킨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고 시적인 흑백영상으로 재현해낸다. 이로써 살인자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의 살인의 기억은 어떤 것인지 탐구하는 한편의 지독히 낭만적인 심리드라마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