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와 만화, 섹스와 마약, 레이브 파티를 즐기는 세기말적인 소녀 니나는 가난한 일러스트레이터다. 집세가 밀리자 냉장고 속 음식에 일일이 이름표를 붙여둘 만큼 구두쇠인 집주인 노파는 온갖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 사사건건 니나를 들볶는다. 니나의 엄마가 부쳐준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가 하면 가정부 다루듯 그녀를 부려먹는다. 쿨한 취향과 재능에 비해 생활과 가난이라는 힘든 상대를 다루는 감각이 부족한 소녀 니나는 고양이 사료를 씹어먹거나 길에서 만난 눈먼 남자의 지갑을 탐내기 시작하면서 점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잃어간다. 결국 이 끔찍한 빚과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노파를 죽이는 것뿐. 칼과 도끼로 노파를 쳐죽이는 상상을 하던 니나는 어느 날 더 이상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겪는다. 누군가를 상상 속에서 죽이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특별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영화 첫머리의 대사가 오버랩되면서 니나는 몽상과 환각, 그리고 현실이 뒤섞인 상태로부터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과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쳐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실사 화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매혹적인 애니메이션 영상과 예리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죄와 벌>의 21세기 사이버펑크 버전인 브라질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