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조산소를 운영하고 계시던 아빠는 나를 무척 예뻐하셨다. 그런데 아빠는 술만 취하면 다른 사람이 되시곤 한다. 기억하기 정말 싫지만 그날도 아빠는 술이 취해 엄마를 폭행하기 시작한다. 유명하진 않았지만 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던 엄마가 바람을 핀다며 애꿎은 트집을 잡아 폭행을 일삼는 것이었다. 당시 10살이던 나는 사춘기 오빠를 따라 욕실로 숨어든다. 오빠는 울기만 하던 내게 말한다. '성재야, 이리 와. 이리 와서 나처럼 물속에 숨으면 아무 소리도 안들려. '나는 오빠의 말을 따라 물 속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나 숨이 막히는 내가 말한다.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해.' 오빠는 다시 말한다. '숨이 막히면 물 속에서 첼로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고 참아. 그러면 더 오래 참을 수 있어' 그렇게 말한 오빠가 나를 안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때 마침 술취한 아빠가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서서는 '어린 것들이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개 패듯 패기 시작한다. 바위덩이만한 주먹으로 내 머리와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세 번 네 번 내 얼굴을 물 속으로 처박기 시작한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시작한다. 그 날로부터 25년. 아빠에게 견디다 못한 엄마는 정신병원에 실려 간 뒤 자취가 없고, 오빠 역시 그 날 이후 25년 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언제부턴가 적막에 갇혀버린 나와 아버지는 매일 밤 화투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71살 노인이 된 아버지는 치매증세를 보이고 있고, 나마저 집을 떠날까봐 시시때때 나를 감시하고 관음한다. 35살이 된 나는 오도 가도 못한 채 오늘밤도 그 남자 앞에 앉아 화투패를 잡는다. 오늘따라 35도를 웃도는 한여름의 폭염이 그런 나를 미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