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나는 3세 때 글을 깨쳤고 15세쯤에는 이미 각계 학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정도로 박학했다. 후아나는 뛰어난 미모와 재능과 재치로 왕실의 총애를 받아 총독부인의 시녀로 지내다가, 성 예로니모 수녀원에 입회하여 수녀가 된다. 후아나 수녀는 수녀원에서 많은 시와 희곡을 쓰고 작곡도 하며 당시 스페인의 '열번째 뮤즈'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여자를 병적으로 혐오하며 여성의 지적 추구를 근본적으로 용납하지 않던 새로 부임한 대주교와 부딪치면서 박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두 주교의 권력 다툼에 교묘하게 이용되어 신학 비평을 쓰게 되는데, 결국 이 글 때문에 그 대주교의 분노를 사서 종교 재판소에 고소되고 지적 활동과 저술 활동을 금지당한다. 후아나 수녀는 4년 후에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 동료 수녀들을 간호하다가 자신도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