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에 반대해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끝까지 저항한 주기철 목사는, 한국기독교의 상징적인 인물인 동시에 가장 대표적인 순교자다. 그가 47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하며 유일하게 남긴 유산은 일사각오(一死覺悟)라는 네 글자로 대표되고 있다. 오직 믿음으로 거대한 일제 권력에 맞서 싸운 주기철 목사의 신앙과 삶을 생생한 증언과 당시 상황 재연을 통해 감동적으로 소개한다. 진정한 ‘믿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신념’은 무엇인가?
①주기철의 삶_ 식민지 역사를 관통하다 13살 주기철은 한일강제합병으로 ‘나라’를 잃고, 그해 성탄절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가 목사 안수를 받던 1925년, 서울 남산엔 조선 신궁이 세워졌다. 이후 황국신민화 정책을 내세운 일본은 천황이 사는 곳을 향해 절하는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조선인의 생명과 정신까지 무한 수탈하겠다는 것이 일본의 정책 목표였다. 이에 반대하며 ‘일사각오’의 길을 걸어간 주기철은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마흔 일곱 살의 나이로 순교한다. 침략자의 거대한 권력 앞에 맞선 작은 개인 주기철.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그의 일대기를 다큐드라마로 만난다.
②13살 아들의 눈으로 본 ‘인간 주기철’ 아버지 주기철은 나이 13살에 ‘나라’를 잃고 ‘하나님’을 만났지만, 아들 주광조는 나이 13살에 ‘아버지’를 잃고 ‘하나님’을 등졌다. 역사는 주기철을 독립 운동가이자 순교자로 기록하고 있지만, 아들 주광조는 “내 아버지는 그저 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공식적인 역사가 기록하지 못하는 인간 주기철의 고뇌와 번민, 갈등을 13살 아들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③독립운동가 주기철_ “가장 존경받는 ‘믿음의 선배’” 주기철은 순교자이기 전에 독립 운동가였다. 오산학교를 졸업한 주기철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으며, 스승 조만식과 전국을 순회하며 ‘물산장려운동’을 펼쳤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현실 앞에서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그의 민족정신은 ‘신념’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일까.
④기독교_ “조선통치상의 ‘암’적인 존재”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조선의 종교단체들은 하나둘씩 신사참배를 수용하기 시작했고, 조선예수교장로회마저 신사참배를 결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기독교는 여전히 일제통치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당시 일제에 맞서다 폐쇄된 교회는 약 200여 개. 목회자와 신도 2천 여 명이 검속되었고, 그 중에 5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종교적 신념을 넘어 범인류적 ‘정의와 신념’의 의미를 묻는, 한국기독교의 독립 운동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⑤주기철이 남긴 믿음의 유산_ ‘범인류적 양심과 가치’ 주기철 그가 떠나고 70년. 우리에겐 ‘일사각오’라는 믿음의 유산이 남았다. 그가 걸어간 ‘신사참배 반대’의 길은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신념을 넘어선 ‘범인류적 양심이자 가치’였다. 자신의 신념을 죽음으로써 지켜낸 주기철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진정한 신념이란 무엇인가? 죽음과 맞바꿔가며 신념을 지켜내는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오늘날 마음의 중심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신념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