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A의 머릿속에 떠 있는 문장이다. A에게 삶이란 무겁다기보다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쯤 하니 A에게 일상은 별 미련도 발악할 거리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직감한 A는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모두가 퇴근한 텅 빈 도시를 떠돌며 거울에 침도 마구 뱉어 보고, 자판기에 있는 모든 음료를 뽑아 거리 위에 굴린다. 이렇게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던 A는 우연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보이던 8번 출구 앞 ‘소원나무’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는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곳에 살아남아 뭘 그렇게 이루고 싶은 걸까?’ 삶의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A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소원이 갖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위해 나무에 걸려 있던 다른 이들의 소원을 모조리 훔친다. 여기, 그 모습을 발견한 B가 있다. B는 마음처럼 되는 일이 하나 없는 세상에 지쳐 일주일 뒤 자살을 계획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지막 바람을 8번 출구 앞 소원나무에 적어 냈었다. 그런데 그런 간절한 마지막 소원마저 누군가 빼앗아 가다니, B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진다. 이제 B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훔친 A를 죽을힘을 다해 쫓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