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부터 1979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철폐를 외쳤던 부마 항쟁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살아온 인물들의 생을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는 방식으로 서술한 조갑상의 소설 『밤의 눈』을 영화로 가져온 오민욱의 <유령의 해>는 소설과 묘하게 공명한다. 소설을 낭독한 내레이션이 간간이 들려오고, 영화에 출연을 제의받은 배우는 소설 속의 인물이 걸었던 수정동과 남포동, 부산역과 부산진역 일대를 반복해 거닌다. 이 공간들의 낮과 밤의 풍경이 실험적인 이미지 안에서 기이하게 공존하고, 소설 속 인물들이 온 몸으로 살았던 공간을 유령처럼 거닐던 영화 속 배우는 끝내 격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영상과 대면하며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았던 이후의 역사까지 지켜본다.